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등포구 갑 (문단 편집)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4> {{{#ffffff {{{+1 '''영등포구 갑'''}}}}}}[br]{{{#ffffff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김영주(1955)|{{{#373a3c,#dddddd 김영주}}}]](金榮珠) || 34,163 || 2위 || || [include(틀: 통합민주당(2008년))] || 42.53% || 낙선 || ||<|2> {{{#ffffff {{{+5 '''2'''}}}}}} || '''[[전여옥|{{{#373a3c,#dddddd 전여옥}}}]](田麗玉)''' || '''35,151''' || '''1위''' || || '''[include(틀: 한나라당)]''' || '''43.75%''' || '''당선''' || ||<|2> {{{#ffffff {{{+5 '''4'''}}}}}} || [[이정미(정치인)|{{{#373a3c,#dddddd 이정미}}}]](李貞味) || 3,352 || 4위 || || [include(틀: 민주노동당)] || 4.17% || 낙선 || ||<|2> {{{#ffffff {{{+5 '''6'''}}}}}} || [[한경남]](韓慶南) || 7,072 || 3위 || || [include(틀: 친박연대(2008년))] || 8.80% || 낙선 || ||<|2> {{{#ffffff {{{+5 '''7'''}}}}}} || 김문식(金文植) || 598 || 5위 || || [include(틀: 평화통일가정당)] || 0.74%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68,087 ||<|3> '''투표율'''[br]48.16% || || '''투표 수''' || 80,950 || || '''무효표 수''' || 614 || [[한나라당]]의 고진화 의원은 현역이지만 한나라당 내에서 가장 '왼쪽'에 자리한 의원.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 [[전여옥]]이 출마를 선언하였다. 전여옥 의원은 고진화 의원과는 달리 당내 강경 보수파를 대표하는 의원. 이 둘은 의정활동 중에도 충돌이 잦았는데, 전여옥 의원이 고진화 의원에게 "당에서 공천도 주고 의료보험료도 내주는데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놀러다니려면 차라리 나가라"라고 할만큼 서로의 성향이 크게 달랐다. 전여옥이 이 지역에 출마를 선언하자 고진화 의원은 크게 반발했지만, 결국 공천은 전여옥 의원이 받았다. 고진화 의원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때 [[박근혜]]의 측근이던 전여옥 의원은 대선 막판 [[이명박]]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한 점, 그리고 당내 보수파로써 보수진영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고진화 의원은 탄핵 반대, 친일진상규명법 찬성, 이라크 파병반대, 개헌논의 지지 등 한나라당 당론에 어긋나는 '독자행보'를 한 점 등으로 인해 당에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보인다. 전여옥 후보는 '네거티브 없는 선거운동'의 의지를 밝히고, '한나라당이 영등포처럼 낙후되고 어려운 분들이 적잖이 계신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등포에 살다보니 이 열악한 여건을 제가 개선해 보고 싶은 강렬한 의지가 생겼다. 또 6년 살다보니 정 많은 곳이라 진짜 뿌리를 내려야겠다 싶었다'고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영등포구 곳곳에는 "똑똑하고 능력있고 힘있는 전여옥 후보"의 플래카드가 걸렸으며, 공약으로 '관통의 철로 테크화', '자사고, 국제고, 개방형 자립고 등의 유치', '준공업 규제 완화를 통한 해제' 등을 내세웠다. 다만, 표절 의혹 등이 제기되며 타격을 입었다.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에서는 당시 비례대표였던 [[김영주(1955)|김영주]] 의원이 도전장을 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왔던 [[이정미(정치인)|이정미]] 후보까지 출마해 여성 주자들의 싸움으로 주목을 받았다.[* 훗날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정의당]] 대표를 지낸 그 [[이정미(정치인)|이정미]] 맞다.] 김영주 의원은 농구선수 출신으로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노동에 눈을 떠,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해 여성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힘썼던 인물. 21년간 이 지역에서 살았고, 준공업지역 해제 및 개편과 최첨단 대학병원 유치, 제2구민체육센터 신축, 신안산선 지하철역 유치, 학교 시설 개선 및 외국어고 자사고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민에게서 공로패만 11개 받았던 만큼 일 잘하는 후보임을 강조했다. [[이정미(정치인)|이정미]] 후보 역시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조직국장을 거쳐 민노당 최고위원과 당 대변인, 당 대회 부의장을 역임했던 인물. '반값 등록금', '등록금 상한제', '대형마트 규제', '카드 수수료 인하', '여성과 아이들이 행복한 영등포'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영등포 시장 중심 서민들을 집중 공략했다. 한편,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의 한경남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여당 표가 갈리게 되었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도 박사모 총동원령을 내려 반드시 한경남 후보를 뽑아 전여옥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들은 전여옥 후보를 향해 '배신자', '표절녀', '부정한 여인' 등 극단적인 표현를 써가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여옥 타도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 김영주 후보와 접전 끝에 불과 1.22%p 차이로 전여옥 후보가 힘겹게 당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